2009년 04월 09일
잊지말아야 할 삼성VCR
과거의 삼성전자는 일본제조업체들에겐 보잘것없는 하찮은 존재였다. 1999년까지도 일본에서 온 라스베가스 가전제품쇼 참관인들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타국의 부츠를 관람하지않는 것이 자국제품에 대한 예의로 여길 정도로 경쟁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해부터, 일본인들의 삼성과 엘지전자에 대한 관심은 실로 한국산 제품에 긍지를 불어 넣기시작 했고, 이제는 가장 힘있는 경쟁상대들로 부각이 되어있으니, 한국인의 자긍심을 일으켜준 삼성과 엘지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Many moons ago,
DVD player, 인터넷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이전, VCR은 유학생들의 사치품중에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기혼학생 기숙사 내에서 독수공방하는 유학생 아내들에게 한국 연속극을 시청할 수있는 VCR은, 같은 또래의 친구를 사귀게 해주는 귀한 재산목록이었다.
어느날 문득 삼성에서 근무하다 유학온 분이, 미국땅으로 처음 수출된 삼성VCR을 거금 350불을 투자하여 구입했고, 곧 부근의 한국학생들을 초청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R&D 엔지니어의 군더더기 살이 붙지 않은 선전(?)은 쎄일즈맨의 그것보다 훨씬 잘 먹혀들어갔는 때문인지, 그곳에 초청되었던 5식구들이 큰맘먹고 꼭같은 삼성VCR을 구입했다. 한편, 예리한 판단력과 앞을 내다보는 능력의 소유주인 한 산업공학도는 턱없이 얕은 애국심보다는 실리를 귀히 여길 줄 알아, 고민과 고민 끝에 결국 파나소닉제품을 거의 동시에 구입하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5개월이 지난 후 6대중 5대가 전자수리점으로 옮겨지고 말았다. 물론 파나소닉제품을 구입했던 분은 입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톨쥬!). 워낙 after service가 약한때이었기에 단 한사람만 350불을 되돌려 받았고 나머지는 몇주일을 아내들에게 들볶여야(?)했다. "애국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음을 비싼 달라를 들여 배움". 물론 단 한사람 만이 VCR을 귀국 이삿짐에 포함시켰고 그 VCR은 삼성제품이 아니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지금도 중국에는 미래의 쏘니와 삼성이 빠른 속도로 질주해오고 있음을 엘지와 삼성은 한시도 잊어서는 아니된다.
Many moons ago,
DVD player, 인터넷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이전, VCR은 유학생들의 사치품중에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기혼학생 기숙사 내에서 독수공방하는 유학생 아내들에게 한국 연속극을 시청할 수있는 VCR은, 같은 또래의 친구를 사귀게 해주는 귀한 재산목록이었다.
어느날 문득 삼성에서 근무하다 유학온 분이, 미국땅으로 처음 수출된 삼성VCR을 거금 350불을 투자하여 구입했고, 곧 부근의 한국학생들을 초청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R&D 엔지니어의 군더더기 살이 붙지 않은 선전(?)은 쎄일즈맨의 그것보다 훨씬 잘 먹혀들어갔는 때문인지, 그곳에 초청되었던 5식구들이 큰맘먹고 꼭같은 삼성VCR을 구입했다. 한편, 예리한 판단력과 앞을 내다보는 능력의 소유주인 한 산업공학도는 턱없이 얕은 애국심보다는 실리를 귀히 여길 줄 알아, 고민과 고민 끝에 결국 파나소닉제품을 거의 동시에 구입하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5개월이 지난 후 6대중 5대가 전자수리점으로 옮겨지고 말았다. 물론 파나소닉제품을 구입했던 분은 입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톨쥬!). 워낙 after service가 약한때이었기에 단 한사람만 350불을 되돌려 받았고 나머지는 몇주일을 아내들에게 들볶여야(?)했다. "애국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음을 비싼 달라를 들여 배움". 물론 단 한사람 만이 VCR을 귀국 이삿짐에 포함시켰고 그 VCR은 삼성제품이 아니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지금도 중국에는 미래의 쏘니와 삼성이 빠른 속도로 질주해오고 있음을 엘지와 삼성은 한시도 잊어서는 아니된다.
# by | 2009/04/09 01:47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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